Human Life/Poetry2009/10/29 15:03


 

가슴이뭉클하다

날은 저물었고
오솔길을 따라 올라간다
나무 하나 지나고
나무 둘 지나고
나무 스물, 서른, 마흔 지나고
풀 하나 지나고
풀 둘 지나고
풀 수도 없이 지나고
숲속 거기, 그 자리에 앉는다
멀리 하늘 위 별빛은 반짝거리는데
문득 가슴이 뭉클하다
언제였던가?
내 가슴이 뭉클했던 때가
너의 그 가슴이 뭉클했던 때가




예전에 어디서인가 잠깐 보았다가, 오늘 잠깐 짬이 날 때 정독을 해 본 시다. 사랑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미래도 현재도 아닌 과거의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 혹은 뭉클함을 담은 시다. 살짝 아련하면서도 암울한 그래서 뭉클한 느낌이 든다.

대낮이 아닌 날이 저물어 가는 시간에 오솔길을 따라 어디론가 올라간다. 무언가 과거를 회상하는 분위기에 딱 어울리지 않는가. 새벽이나 아침 혹은 대낮에 올라가는 것과, 해가 저물어가는 산을 그것도 오솔길을 올라가는 것에 대한 느낌은 대번에 차이가 난다.

오솔길을 올라가며 나무를 헤아린다. 꼭 화자가 지난날 살아온 세월의 수를 헤아리는 듯 하다. 그 세월의 수를 거슬러 올라가며 풀도 센다. 풀(추억, 기억)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숲속에 거기(!)에 앉았다. 멀리 하늘 위의 별빛은 반짝거리며 뭉클거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였던가? 너와 나의 그 가슴이 뭉클했던 때가. 이렇게 지난날을 회상한다.

지금이야 대충 시를 읽고 말았지만, 10~20년 후에 내가 다시 이 시를 읽을 때는 또 어떤 느낌일까? 20살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별 느낌이 없었다가 30살이 가까워진 지금에서야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가슴이 찡~한 느낌을 받는 그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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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maneer
Human Life/Poetry2009/04/27 12:33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김기택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새처럼 날아들어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는 온종일 현기증도 없이 20층의 하늘에 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쉴 새 없이 지저귀느라
한순간도 땅에 내려앉을 틈이 없다.



 

단 0.1%의 오차도 없는 씁쓸한 나의 이야기


어제 저녁 정주와 배드민턴 셔틀콕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제법 꼼꼼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리석으로 된 아파트 복도를 걸어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아파트 복도를 나와 보도블럭으로 된 길을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아스팔트를 잠시 밟다가 슈퍼마켓에 가서는 플라스틱으로 된 바닥재를 밟았고, 마지막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제법 신나게 놀았다. 흙은 단 한 톨도 밟지도 않았다.(혹은 못하였다).


우리 동네 놀이터엔 모래흙이 없다


놀이터에는 흙이 있지 않느냐고? 우리 동네 놀이터엔 고운 황금빛깔의 모래흙대신, 모래흙의 푹신함만 베껴온 스펀지 재질의 바닥이 있었다. 그 바닥 위에서 정주와 나는 그네를 타고 미끄럼을 타며 장난치고 재밌게 놀기는 하였다. 아마 어린 꼬맹이들도 재미나게 놀기는 하겠지. 하루종일 놀아도, 넘어지고 뒹굴어도, 옷과 몸에는 흙투성이가 될 걱정없이 아~무런 걱정없이 놀기는 하겠지. 하지만 학원가기 바쁘고, 컴퓨터 게임하느라 바쁜 꼬맹이들이 최첨단 스펀지 바닥으로 된 푹신한 21c의 놀이터에서 얼마나 뛰어 놀 것이며, 논다 할 지라도 모래흙이 무엇인지나 알까? 그 아이들이 자라서 흙으로 반죽을 하며 놀던 그 놀이, 놀다가 넘어져서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버려서 어머니께 무지하게 혼났던 그런 더럽고 지저분한(?)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나조차도 지금 이 글을 쓰며 '간신히' 기억해낼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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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maneer
Human Life/Poetry2009/03/30 08:28


헌 신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 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 신, 부디 헌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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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maneer
Human Life/Poetry2008/07/09 16:48
 
오늘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우리는 항상 미래를 위해 현재의 기쁨을 누릴 줄 모르고, 무언가 거창한 것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대한다.  또한 과거의 잘못 회한으로 현재의 행복을 누릴 줄 모르고, 그 과거에 매여서 현재를 그 괴로운 과거처럼 후회하며 보내버린다.

구상 시인은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옹달샘에서부터 바다에까지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과거-현재-미래가 이어져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요즘 세상은 모든 것을 discrete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너무 극단적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0과 1의 bit로 구성되는 digital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러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모든 것을 딱딱 구분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공돌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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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과거는 무엇이고 미래는 무엇이며 현재는 무엇인가? 다 하나가 아닌가... 다 영원이다.

그래서 시방 나도 그 영원을 살고 있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겠다.
과거의 회한으로부터 미래를 향한 의미없는 집착으로 괴로워 하고  내 마음이 병드는 것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다 주는,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겠다.


그리고 ... 사랑하오 이정주씨~♡
이 영원을 함께하며 사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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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Human Life/Poetry2008/06/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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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봤을 때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라는 시의 앞부분이 생각이 났다.
생명이 탄생하거나 또는 탄생하여 성숙해갈때,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예로 들면 먼저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야 하고, 태어나서는 부모님이 키워주셔야 하고 또한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고 학교도 가야한다.

시골이나 한적한 마을 어딘가에 보이는 노오란 들국화 역시 그냥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아무생각없이 들국화가 핀 것을 보고 지나칠 때, 이성선은 그 꽃을 하늘이 피우셨다는 것을 깨닫는다.(하늘이란 자연의 삼라만상이라고 해석해도 될 듯하다.) 햇빛과 바람과 이슬과 흙과 벌과 나비 등이 들국화를 피웠다는 것을 깨달은 이성선은 그것을 한지에 싸서 비밀히 당신께 드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비밀히 드리는 이유는 하늘이 피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들국화를 하늘이 피운 것임을 아는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당신만이 들국화 향기를 간직하기 가장 알맞은 까닭인 것이다.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지만, 진부하지 않은 느낌 . 이런 느낌 때문에 이성선 시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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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Human Life/Poetry2008/05/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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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와 자셔도 좋소.

왜사냐건
웃지요.

**

중학교때였던가? 아니면 고등학교 다닐 때였던가? 이 시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웃었다.  은유법이 어쩌고 저쩌고 대유법이 어쩌고 저쩌고, 운율이 이래저래 어쩌고 저쩌고를 윽박지르던 국어 선생님이 이 시를 낭송할 때는 뭐랄까... 색다른 느낌을 받았더랬다.

이 시를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지만 그 때 국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이름이 뭐였더라... 피식~

내가 일하는 사무실엔 창문이 없다.  당연히 공기도 탁하고 채광도 구리다. but 난 남으로 창을 낼테다.
내 마음속에...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내 마음속에 내 꿈과 희망을 가꿀테다.

이런 내가 부러운 사람은 나랑 강냉이 혹은 볶은 콩을 함께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고? 웃으려고, 혹은 먹으려고, ...
비록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는 하나, 죽음만 생각하기엔 너무 죽음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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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TAG 문학,
Human Life/Poetry2008/04/13 21:23

심심한 날
                                          박정만

아득한 하늘가에 눈을 맞추고
마음은 고요의 속살에 젖다.
눈부신 햇볕 속의 지박는 소리,
어디선가 무궁한 잠이 나를 부르고
불러도 소리 없는 산 메아리.
가는귀 먹은 듯이 눈이 흐리어
소금물로 귀를 씻고 잠을 請하다.


**

사람은 원래 고독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혼자가 됨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自存을 추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언뜻 우리는 사회에서, 가족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듯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혼자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자신은 부족한 혼자임을 깨닫는 자만이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의지만 하지 않고 상대방과 시너지 효과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모든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그것의 결과가 성공이건 실패이건 간에...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속에서 소금물로 귀를 씻고 잠을 청하겠단다.  심심한 날, 혼자 방에 누워 잠을 청하더라도 저런 여유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멋져보인다.  똥폼이건 아니건 간에. ㅋㅋㅋ

깔깔이 입고 낮잠자는 맛이란!! ㅋㅋ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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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Human Life/Poetry2008/03/20 16:59
Invictus

-William Ernest Henley
 (English poet, critic and editor, 1849 - 1903)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For my unconquerable soul.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Under the bludgeonings of chance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흙 같은 암흑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잔인한 마수에서
난 움츠렸을지언정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내려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는다.

분노와 눈물의 이 땅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문이 아무리 좁다 해도
수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

최선을 다해 앞으로 향해 전진하자.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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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Human Life/Poetry2008/02/11 22:17
사랑
                             김후란
집을 짓기로 하면
너와 나
둘이 살
작은 집 한 채 짓기로 하면

별의 바다 바라볼

꽃나무 심어 가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고

네 눈 속에 빛나는
사랑만 있다면
둘이 손잡고 들어앉을
가슴만 있다면.

나 역시 이러한 사랑을 꿈꾼다.
우리 깜장콩도 그렇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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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Human Life/Poetry2007/10/02 01:50
접시꽃 당신  written by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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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한 붉은색이 아닌 청초한 붉은색인 접시꽃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성이 '송' 이셨는데.. 송 무슨 선생님이 셨더라? -_-; 나의 기억력도 이젠 한물 갔나보다.  아니지 난 항상 기억하고픈 것은 기억을 잘 못하니 그닥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송 무슨 선생님의 문학수업은 꽤나 재미가 있었다.  특히 김유정의 '동백꽃' - 오늘도 우리 닭이 쪼이었다로 시작하는 무지 재미난 소설! -에 대해 수업을 하실 때 너무 열성적이라 동백꽃이라는 별명까지 붙였으니 말이다.


anyway~ 이 선생님께서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에 대해 잠깐 언급하셨던 기억이 난다.  죽음을 앞둔 부인에게 바치는 시를 썼는데 당시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흘리게 하였다고 말이다.  하지만 부인과 사별하고 얼마가지 않아 재혼을 했다고 말이다. -_-  뭐 다들 아시다시피 나는 편견이라는 것이 꽤나 있는 편이라, 시를 읽지도 않고 내 멋데로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보나마나 뻔한 최루성의 시일 것이고, 온갖 미사여구와 관용구를 사용하여 눈물 흘리기 좋아하는 사람들 꽤나 울리는 시일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엔 재혼을 해버린 어처구니 없는 시인이라고.


그로부터 대략 9년이 지났다. 우연찮게 이 시를 감상하게 되었는데, 나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는다. 정말 파장을 일으킬만 하구나, 이렇게 절제된 문체로 부인과 사별해야하는 슬픔을 절실히 나타낼 수도 있고나 라고 말이다.  또한 그 크나큰 슬픔을 자신 보다 더 어렵고 슬픈 사람들의 아픔과 연관하여 의연하고 겸허하게 극복을 해나가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내 뒷통수를 마구마구 후려쳤다.


두 부부는 조그마한 시골에서,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을 것이다. 자연을 닮아 서로 아껴주고 보살펴주고 악한 마음 품지않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벌레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 못할 만큼 착하게 살아온 그런 부인과 사별해야하는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그러나 시인은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슬픔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내고자 하며, 또한 먼저 가야하는 부인을 침착하게 다독거린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 부인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표현하며 시는 마무리된다.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이 시를 보지도 않고 그저 그런 사랑 놀음에 최루성 詩일 것이라 멋대로 생각해버린 내가 심히 부끄럽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스러운 점 하나, 시인은 사랑이 너무 그리워 결국 다른 사랑을 찾은 것일까?  혹자는 도종환 시인의 다른 시를 살펴보면,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길이 사별한 부인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1년이라는 세월이 길다면 길수도 짧다면 짧을수도 있겟지만, 그래도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을 보내고 재혼을 한다는 사실이 좀 우습기도 하다. 제법 생각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사실 바람이다-_-)은 재혼한 여인이 시인의 전부인의 제삿날을 먼저 챙겨주는 그런 사람은 아닐까? 시인의 아픔까지도 감싸주는 또다른 사랑스러운 여인은 아닐까?


인터넷에 어떤 사람은 사별한 부인을 팔아 새살림 차렸다 -_-;;;;;;  라고 하지만 ... 그것은 솔직히 오버인듯.
어쨌든 봐도봐도 가슴이 쓰라린 시다.

** 참고로 이 글은 예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옮겨 온 것이다. 실제 작성일 2007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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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